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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청렴한 인물을 찾아서6 - (성현)
작성자 이삼희 등록일 13.08.30 조회수 290

부휴자(浮休子) 성현(成俔)

 

성현[成俔, 1439~1504]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62년(세조8년) 문과에 급제, 연산군 대에 이르러 공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냈다. 본관은 창녕이며 호는 용재(慵齋), 허백당(虛白堂)이다. 이름만으로 보면 다소 생소한 듯 하지만 우리 역사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악학궤범(樂學軌範)'의 편찬자로서 의외로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악학궤범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악학궤범'은 성현이 당시 왕이었던 성종의 명을 받아 유자광 등과 함께 궁중음악과 당악, 향악에 대한 이론과 법식, 악보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으로서 현재까지도 전통음악의 독보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즉, 성현은 일반적인 정치인이나 관료를 넘어서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던 풍류객이었던 것이다.

 

'악학궤범' 외에도 성현은 많은 저술을 남겼다. 오늘날에도 한글로 번역, 시판되고 있는 문집 '용재총화(慵齋叢話)'는 조선 전기의 정치 ·사회 ·제도 ·문화를 살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 외에도 '허백당집(虛白堂集)', '풍아록(風雅錄)', '부휴자담론(浮休子談論)', '주의패설(奏議稗說)', '태평통재(太平通載)' 등 교과서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많은 책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많은 역사적, 학술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죽은 지 수개월 후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참혹한 일을 당하였다. 

얼마 후 신원(伸寃)되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어 역사 속에 당당하게 이름을 남기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인 일이라고 하겠다.

주목할 것은 성현이 청백리에 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주로 정치가, 관료, 학자, 저술가 등으로 알려지다 보니 그 청렴한 면모가 가려져 있던 셈이다.

 

 

 

성현은 평소 소탈한 성격으로 구애됨이 없고 순탄하여 남들과 경쟁함이 없는 군자형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저서인 '부휴자담론(浮休子談論)' 에서 이러한 면모를 잘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부휴자’란 성현 자신의 분신(分身)을 일컫는 것으로서 부휴자라는 사람의 전기 형식으로 자서전을 기술한 것이다.

성현은 ‘부휴자(浮休子)’라는 이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에 나서 사는 것이 마치 떠있는 것 같고 죽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쉬는 것 같으니 무엇이 영화로운 삶이며, 쉰다는 것이 또 무엇이 슬프겠는가”

 

말하자면 부휴자는 사리사욕과 이권, 명예, 경쟁 등 세상 모든 것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다. 욕심없이 소박하게 살아감으로써 권력에 줄대지 않고 돈에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휴자는 자신의 분수를 알고 청렴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표본이기도 하다. 자신을 억지로 꾸미려 하지 않고 대신 타인의 좋은 점을 발견하면 따라서 배우려고 노력한다.

 

 

 

 

 

대신 부휴자에게는 시짓는 것과 거문고 연주를 즐기고 산수유람을 즐기며 삶을 관조하는 유유자적함이 있다.

말년의 성현이 달밝은 밤 하얀 백발을 날리며 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아들 성세창의 친구인 홍모는 ‘마치 신선이 내려온 듯 맑고 시원한 기운이 온몸에 가득한 것이 느껴지니 진정 선골유골(仙骨流骨)의 풍류객이라고 할만하다’라고까지 예찬했다고 한다. 일부러 자신을 꾸미려 하지 않아도 내면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 곧 부휴자의 삶인 것이다.

 

성현이 일생동안 철칙으로 삼았던 10계명을 보면 그의 욕심없고 청렴한 삶의 자세가 더욱 잘 드러난다.

경천(敬天, 하늘을 공경), 신독(縝獨, 혼자 있을 때 몸가짐을 조심), 정심(正心, 마음을 바르게 가짐), 과욕(寡慾, 욕심을 부르지 않음), 개과(改過, 과오가 있으면 고침), 지치(知恥, 수치를 안다), 수약(守約, 검소하게 삶), 행간(行簡, 간명하게 행동), 천형(踐形, 사람답게 산다), 복례(復禮, 예로 살아야 한다) 등 10가지 신조는 비단 공직자 뿐만 아니라 어지러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성현은 죽음을 앞두고 유언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임금의 은혜를 입어 벼슬이 육경에 이르렀으되 칭찬할만한 덕이 없다. 장례는 검소하게 하고 표석이나 세우고 비는 세우지 말라”

 

당대의 고위공직자이자 학자였으나 마지막까지 자신을 낮추고 검소함을 추구한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알리고 타인의 칭찬을 얻고자 하는 것이 소인의 길이라면 성현은 마지막까지 군자의 길을 따랐다. '자기PR의 시대'에 살며 자신을 잘 포장하고 널리 알리는 것을 능력이자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인들에게는 당혹스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다른 누구 못지않게 성현이라는 인물을 기억하니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은 자기 PR을 하지 않아도 세상이 기억해준다는 것을 잘 반증해주는 셈이다.

 

욕심없이 떠도는 부휴자의 겸손한 최후가 마지막까지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출처-국민권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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